혈우병은 출혈이 잘 멈추지 않는 희귀 유전질환입니다. 경증혈우병A를 진단받은 환자가 직접 경험한 일상의 변화와 주의사항을 솔직하게 기록했습니다.
강직성척추염, 항인지질증후군에 이어 경증혈우병A까지. 세 가지 희귀질환을 진단받으면서 혈우병에 대해 처음부터 공부해야 했습니다. 이번 글은 혈우병이 무엇인지, 그리고 경증혈우병A 환자로서 실제로 달라진 것들을 정리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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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병이란 무엇인가
혈우병(Hemophilia)은 혈액 응고에 필요한 특정 인자가 부족하거나 결핍되어 출혈이 잘 멈추지 않는 희귀 유전질환입니다.
우리 몸은 상처가 생기면 혈액 응고 인자들이 연쇄적으로 작동하여 피를 멈추게 합니다. 혈우병 환자는 이 과정에서 특정 인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같은 상처라도 출혈이 더 오래 지속됩니다.
혈우병의 종류
혈우병은 부족한 응고 인자의 종류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 종류 | 부족한 응고 인자 | 비고 |
|---|---|---|
| 혈우병A | 8번 응고 인자 부족 | 전체 혈우병의 약 80% |
| 혈우병B | 9번 응고 인자 부족 | 전체 혈우병의 약 20% |
저는 8번 응고 인자가 부족한 혈우병A입니다.
중증도에 따른 분류
혈우병은 응고 인자의 활성도에 따라 중증도가 나뉩니다.
| 분류 | 응고 인자 활성도 | 특징 |
|---|---|---|
| 중증 | 1% 미만 | 자발적 출혈 가능, 정기 예방 주사 필요 |
| 중등증 | 1~5% | 가벼운 외상에도 출혈 지속 |
| 경증 | 5~40% | 일상생활 가능, 수술·외상 시 주의 필요 |
저는 경증혈우병A로, 수치가 위험한 수준은 아니어서 정기적인 주사 치료는 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술이나 외상이 발생했을 때는 일반인과 다른 대처가 필요합니다.
경증 수준이 아닌 환자 분들은 보통 주기적으로 혈액응고인자를 투여받는 방식으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정맥으로 투여를 하며, 주 2~3회 정도 투여를 받습니다.
과거에는 혈우병 환자들의 평균 수명이 짧았지만 치료법이 개발된 이후로는 환자들의 평균 수명은 일반인들과 비슷해 졌다고 합니다.
혈우병은 왜 생기는가
유전적 원인
혈우병은 X염색체와 연관된 유전질환입니다. 이 때문에 주로 남성에게 발병합니다.
여성은 X염색체가 두 개이기 때문에, 하나에 이상이 있어도 다른 하나가 보완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남성은 X염색체가 하나뿐이기 때문에, 해당 유전자에 이상이 있으면 혈우병이 발병합니다.
어머니가 보인자(carrier)인 경우 아들에게 혈우병이 유전될 수 있습니다.
저는 정확히 어떠한 요인으로 혈우병에 걸렸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희귀질환들이 대부분 명확하게 발병 원인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돌연변이에 의한 발병
가족력이 없어도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혈우병이 새롭게 발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체 혈우병 환자의 약 30%는 가족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저도 가족 중에 혈우병은 저 밖에 없습니다.
혈우병 진단 후 달라진 것들
헌혈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혈우병 진단 후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헌혈이었습니다.
혈우병 환자는 헌혈을 할 수 없습니다. 응고 인자가 부족한 혈액을 수혈받는 사람에게 오히려 위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단 이전에는 헌혈을 종종 하던 사람이었는데, 진단 이후로는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별거 아닌 변화이긴 하지만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어서 하지 못하는 것은 체감상 크게 다가옵니다.
출혈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일상에서 출혈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습니다.
경증이라 일상적인 상황에서 큰 문제가 생긴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항상 머릿속 한 켠에 “혹시 크게 다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래 축구를 좋아했었는데 강직성 척추염과 혈우병이 겹치면서 축구는 그 뒤로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격렬한 스포츠는 언제나 부상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원천 차단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편도 수술 외에 크게 다치거나 심각한 출혈이 생긴 적은 없습니다. 역설적으로 그 경험이 없다 보니 실제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렵고, 그래서 더욱 불안한 부분이 있습니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
혈우병과 관련하여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입니다.
경증혈우병이기 때문에 일상에서 특별한 문제가 생긴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이유로, 정말 큰 사고가 생겼을 때 내 몸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릅니다. 일반인과 똑같이 대처하면 되는 건지, 아니면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지는 건지 아직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혈우병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강직성척추염도 회사에 말하지 못했습니다. 혈우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족 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왜 말하지 못하는가
희귀질환이 여러 개 있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렸을 때 돌아올 시선이 두려웠습니다.
물론 걱정스러운 시선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차가운 시선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이런 생각들이 직장에서, 사회에서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현실적인 두려움이 있습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세 가지 희귀질환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이해받기보다 의심받는 경우가 더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가족 외에는 혈우병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비슷한 상황에 계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혼자 감당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이 블로그를 통해서라도 같은 처지의 분들과 연결되고 싶었습니다.
혈우병 환자가 주의해야 할 것들
경증혈우병이라도 알아두어야 할 사항들이 있습니다.
수술 및 시술 전 반드시 의료진에게 알려야 합니다
어떤 수술이나 시술을 받을 때도 혈우병 사실을 담당 의사에게 반드시 알려야 합니다. 치과 치료, 내시경, 주사 치료 등 출혈이 수반될 수 있는 모든 의료 행위가 해당됩니다.
저는 산정특례 대상자로 등록되어 있어 어느 병원을 가든 시스템에 표시가 되지만, 혹시라도 놓칠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해 직접 말씀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스피린·소염진통제 복용 시 주의가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아스피린은 혈소판 기능을 억제하여 출혈 위험을 높입니다. 혈우병 환자에게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약물입니다. 저는 심지어 아스피린 알러지도 있는 상황이라 아스피린은 애초에 먹지 않습니다.
강직성척추염 치료에 소염진통제를 사용하는 저로서는 이 부분이 항상 신경 쓰이는 부분입니다. 처방을 받을 때마다 의사에게 혈우병 사실을 확인시키고 약을 받고 있습니다.
응급 상황 시 대처 방법을 미리 알아두어야 합니다
큰 외상이나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면 일반 응급실보다 혈우병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응고 인자 제제를 투여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곳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혈우병 확진이 되면 즉시 혈우병 제단에 제 정보가 등록이 되어서 혹시라도 긴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내에 혈우병 환자는 불과 3천명이 되지 않는 아주 희귀한 질병이라 혈우재단에서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미리 가까운 혈우병 치료 가능 병원을 알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마치며
혈우병은 겉으로 전혀 표가 나지 않는 병입니다. 강직성척추염처럼 통증이 매일 있는 것도 아니고, 항인지질증후군처럼 특별한 치료를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언제든 큰 사고가 생기면 일반인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는 사실이, 조용하지만 지속적인 불안으로 남아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항인지질증후군이란 무엇인지, 혈우병과 정반대의 성질을 가진 이 두 질환이 어떻게 한 몸 안에 공존하는지 이야기합니다.
👉 다음 글: 항인지질증후군이란 무엇인가 — 혈우병과 정반대인 희귀 자가면역질환 (작성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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