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 수술 전 피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었습니다. 동네 병원, 종합병원, 세브란스병원을 거쳐 경증혈우병A와 항인지질증후군을 진단받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했습니다.
강직성척추염 진단을 받은 지 2년도 채 안됐을 때였습니다. 반복되는 편도 염증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편도 제거 수술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 이전 글: [강직성척추염과 함께한 첫 3~4년 ㅡ 가장 힘들었던 시간2]
수술 전 피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었습니다
편도 제거 수술을 위해 동네에서 편도제거 수술로 유명한 병원을 방문해 수술 전 기본 피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전화가 와서 검사 결과에서 팩터8번 수치가 좀 이상하니 다시 한번 검사를 받아보자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런 경우가 가끔씩 있는데 대부분 다시 검사하면 정상으로 나온다고 해서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재검사를 했는데 결과는 동일했습니다.
두 번 모두 동일한 결과가 나오자 해당 병원에서는 수술을 진행할 수 없으니 편도 제거 수술을 받으려면 큰 병원으로 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종합병원으로 가서 다시 검사를 받았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해프닝으로 끝날 줄 알았습니다.
종합병원에서 이번엔 대학병원으로
동네 병원의 안내에 따라 종합병원을 찾아가서 다시 피검사를 받았습니다.
결과를 본 의사의 표정이 굉장히 심각했습니다. 지금 편도수술이 문제가 아니라 아무래도 혈우병인 것 같으니 빨리 혈우병재단이나 대학병원으로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언젠가 티비에서 들어봤던 혈우병이라는 단어가 귀에 들어왔습니다. 편도 수술을 하러 갔다가 혈우병 이야기를 듣게 된 것입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확진 — 경증혈우병A

정밀검사를 위해 세브란스병원의 소아혈액종양과로 예약하고 찾아갔습니다. 진료를 기다리면서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을 봤는데 아무래도 소아혈액종양과이다 보니 어린 환자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대부분 혈액암인 것 같았는데 정말 말문이 막히는 모습들이었고 정말 많은 생각이 드는 장면으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피 검사를 진행했고 결과가 나왔습니다.
경증혈우병A 확진이었습니다.
혈우병이란 무엇인가
혈우병은 혈액 응고 인자가 부족하여 출혈이 잘 멈추지 않는 질환입니다. 혈우병A는 8번 응고 인자가 부족한 경우입니다.
혈우병은 중증도에 따라 중증, 중등증, 경증으로 나뉩니다. 경증혈우병은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큰 문제가 없지만, 수술이나 외상 시 출혈이 잘 멈추지 않을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다행이라고 표현을 하는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제 수치가 위험한 수준은 아니어서 별도의 주사 치료는 받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혈우병 환자들은 주기적으로 주사를 맞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도 평소에 굉장히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고가 나거나 수술을 받아야 할 때 일반인과는 다른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혈우병만이 아니었습니다 — 항인지질증후군까지
검사 결과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항인지질증후군도 함께 있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순간 기가 막혔습니다. 강직성척추염으로도 힘든 상황에서 희귀질환이 두 개나 더 추가된 것이었습니다.
항인지질증후군이란 무엇인가
항인지질증후군은 혈액 내 항인지질 항체가 존재하여 혈전(피떡)이 잘 생기는 자가면역질환입니다. 혈전이 혈관을 막으면 뇌졸중, 심근경색 등 심각한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혈우병과 항인지질증후군이 동시에 있다는 것
이 두 질환은 서로 정반대의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 혈우병 | 항인지질증후군 | |
|---|---|---|
| 특성 | 피가 잘 안 멈춤 (출혈 경향) | 피가 잘 굳음 (혈전 경향) |
| 위험 | 출혈 위험 | 혈전·색전 위험 |
| 치료 방향 | 응고 인자 보충 | 항응고제 투여 |
출혈이 잘 멈추지 않는 질환과, 혈전이 잘 생기는 질환이 같은 몸 안에 공존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담당 의사도 이 조합이 매우 드문 케이스라며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의사도 제대로 설명을 못 하는 상황에서, 환자인 저는 더욱 막막했습니다. 분명히 어떠한 설명을 해주셨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도 않고,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하냐는 질문에 의사도 명쾌한 답변을 못해줬던 기억만 남아있습니다.
다행히 두 질환 모두 수치가 위험한 수준은 아니어서 현재는 별도의 치료 없이 건강 관리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희귀질환이 여러 개 있다는 것
강직성척추염, 경증혈우병A, 항인지질증후군. 세 가지 모두 희귀난치성 질환입니다.
각각 따로 있어도 힘든 질환들인데, 이것들이 한 몸 안에 공존한다는 것은 치료와 일상 모두에서 복잡한 상황을 만들어냅니다.
강직성척추염 치료에 기본적으로 쓰이는 소염진통제는 출혈 위험을 높일 수 있어, 혈우병이 있는 환자에게는 더욱 신중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반대로 항인지질증후군의 혈전 위험을 관리하는 항응고제는 혈우병과 충돌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여러 희귀질환이 동시에 있는 경우, 각 질환의 치료 방향이 서로 충돌할 수 있습니다. 이런 케이스일수록 여러 과의 전문의들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치료 방향을 조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당시에 병원에서 혈우병은 산정특례 등록을 해줬는데 항인지질증후군은 등록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강직성척추염이 이미 있어서 신청을 안한건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희귀질환이 있을 때 약 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세 가지 희귀질환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보니, 약 처방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큰 문제가 된 적은 없었습니다.
산정특례 대상자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병원을 가든 진료 시스템에 산정특례 대상자라는 안내가 뜹니다. 그러면 의사가 먼저 현재 복용 중인 약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처방을 내립니다.
의사들의 반응이 다양해서 그걸 보는 재미가 있긴 합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의사도 있는 반면, 깜짝 놀라면서 어떤 식으로 치료하고 있냐고 물어보는 의사들도 있습니다.
덕분에 약물 간 상호작용이나 충돌 위험을 사전에 걸러낼 수 있었습니다.
산정특례 제도가 중요한 이유
산정특례는 단순히 치료비를 줄여주는 제도가 아닙니다. 희귀난치성 질환 환자라는 사실이 의료 시스템 안에서 공식적으로 기록되기 때문에, 어느 병원을 가더라도 담당 의사가 환자의 상황을 파악하고 더 신중하게 처방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희귀질환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면 산정특례 등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마치며
편도 수술 하나를 앞두고 시작된 검사가, 두 가지 희귀질환을 추가로 발견하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몰랐다면 더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결국 편도 제거 수술을 했던 경험에 대해 말하려 합니다.
👉 관련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