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인지질증후군이란 무엇인가 — 혈전이 언제 생길지 모르는 병

항인지질증후군은 혈전이 잘 생기는 희귀 자가면역질환입니다. 혈우병과 정반대의 성질을 가진 두 질환이 동시에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환자가 직접 기록했습니다.



혈우병A 확진과 함께 항인지질증후군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혈우병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에 포커스가 쏠려 있던 탓에, 당시에는 항인지질증후군에 대해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의사에게 물어봐도 그 자리에서 명확한 설명을 듣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부하고 알게 된 것들을 이번 글에 정리합니다.

👉 이전 글: [혈우병이란 무엇인가 — 경증혈우병A 6년차 환자가 직접 설명합니다]


항인지질증후군이란 무엇인가

항인지질증후군(Antiphospholipid Syndrome, APS)은 혈액 내에 항인지질 항체가 존재하여 혈전(피떡)이 비정상적으로 잘 생기는 자가면역질환입니다.

쉽게 말하면, 면역체계가 혈액 내 인지질이라는 물질을 적으로 인식하고 공격하면서 혈액이 비정상적으로 응고되는 상태입니다.

자가면역질환이라는 점에서 강직성척추염과 공통점이 있습니다

강직성척추염도, 항인지질증후군도 모두 면역체계가 자기 몸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입니다.

강직성척추염은 면역체계가 척추와 관절을 공격하고, 항인지질증후군은 면역체계가 혈액 내 인지질을 공격합니다. 한 사람 안에 두 가지 자가면역질환이 공존하는 것이 드문 일이긴 하지만, 자가면역질환은 한 가지만 있는 경우보다 여러 가지가 동반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항인지질증후군의 주요 증상과 위험

항인지질증후군의 가장 큰 위험은 혈전입니다.

혈전이 혈관을 막으면 위치에 따라 다양한 합병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혈전 발생 위치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
뇌혈관뇌졸중, 일과성 허혈 발작
심장 혈관심근경색
폐혈관폐색전증
하지 혈관심부정맥혈전증
태반 혈관반복 유산, 임신 합병증

수치가 위험한 수준이 아니라면 일상적인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현재 특별한 증상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증상이 없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증상이 없어서 더 무서운 병

이 질환의 무서운 점은 혈전이 생기기 전까지 아무런 증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이 발생하고 나서야 항인지질증후군이 원인이었다는 걸 아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기적인 검사와 관리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혈우병과 항인지질증후군 — 정반대의 질환이 동시에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두 질환의 조합은 의사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할 만큼 드문 케이스입니다.

구분혈우병A항인지질증후군
문제응고 인자 부족 → 피가 안 멈춤항인지질 항체 → 혈전이 잘 생김
방향출혈 경향혈전 경향
치료 방향응고 인자 보충항응고제 투여

한쪽은 피가 잘 안 멈추는 질환이고, 다른 한쪽은 피가 너무 잘 굳는 질환입니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있다는 것은, 어느 한쪽을 치료하면 다른 쪽이 악화될 수 있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의사 입장에서도 치료 방향을 잡기 어려운 케이스입니다. 혈우병 검사를 하게 되며 알게 되었었는데, 저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아 의사한테 물어봤었지만 의사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며 이 상황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환자로서 솔직한 이야기

처음에는 항인지질증후군에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혈우병과 항인지질증후군을 동시에 진단받던 날, 사실 항인지질증후군에는 크게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혈우병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의사 또한 혈우병에 포커스를 맞추고 설명을 해줬지 이 질환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을 하질 않아서 처음에는 이렇게 위험한 질병인지도 몰랐습니다.

나중에 스스로 공부하면서 이 질환이 무엇인지, 얼마나 주의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일상은 이미 달라져 있었습니다

이 질병으로 인해 일상이 추가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이미 강직성척추염과 혈우병으로 인해 일상이 충분히 달라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출혈에 신경을 쓰고, 무리한 활동을 자제하고, 몸 상태를 살피는 것이 이미 일상이 된 상황에서 이 질병으로 인해 추가로 변화시킨 부분은 없었습니다.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느낌

항인지질증후군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느낌.”

혈전이 언제 생길지 모릅니다. 오늘 멀쩡하다고 내일도 멀쩡하리라는 보장이 없어요. 그런데 그 사실을 매일 의식하면서 살면 오히려 일상이 불가능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둔감해졌습니다. 걱정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걱정을 하면서도 일상을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겁니다.

아마 오래 희귀질환과 함께 살아온 분들이라면 이 감각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처음에는 두렵고 불안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몸이 먼저 알게 됩니다.


항인지질증후군 환자가 주의해야 할 것들

정기적인 혈액 검사가 중요합니다

항인지질 항체 수치와 혈액 응고 관련 수치를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치 변화를 꾸준히 모니터링해야 혈전 위험이 높아지는 시점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진단 기준상 혈액 검사에서 항인지질 항체가 2번 이상 양성으로 나오고, 반복적인 혈전증·습관성 유산·혈소판 감소증 중 하나의 증상이 확인되어야 항인지질증후군으로 진단됩니다. 수치가 한 번 나왔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꾸준한 추적 검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장시간 움직이지 않는 상황을 피해야 합니다

수술 등으로 장기간 침상 안정을 취해야 하거나 장시간 비행 등 고정된 자세를 오래 취하는 것은 혈전 발생의 위험성이 증가하므로 주의해야 하며,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의료진과 상의하여 예방적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장거리 비행, 장시간 운전, 오래 앉아있는 업무 환경이라면 1~2시간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거나 걷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혈전의 위험 신호를 알아두어야 합니다

혈전이 생겼을 때 나타나는 신호를 미리 알아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리의 심부 정맥에 혈전이 생기면 종아리 또는 허벅지에 통증과 열감, 발적, 부기가 나타납니다. 폐로 이동하는 경우 호흡 곤란과 가슴 통증이 발생합니다. 이런 증상이 갑자기 나타난다면 즉시 병원을 방문해야 합니다.

동맥 혈전의 경우 뇌졸중 증상인 갑작스러운 편측 마비, 언어 장애, 심한 두통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골든타임이 있으므로 즉시 응급실을 방문해야 합니다.

혈전 위험 인자를 관리해야 합니다

경구 피임제 복용은 중단해야 하고, 혈압·당뇨·고지혈증에 대한 치료를 잘 해야 하며, 금연해야 합니다. 이런 요인들이 항인지질증후군과 결합되면 혈전 위험이 훨씬 높아집니다.

규칙적인 운동과 건강한 체중 유지, 포화지방이 적고 항산화제가 풍부한 균형 잡힌 식단도 혈전증 위험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수술 및 시술 전 반드시 의료진에게 알려야 합니다

어떤 수술이나 시술을 받을 때도 항인지질증후군 사실을 반드시 담당 의사에게 알려야 합니다. 특히 혈전증의 위험성이 있는 수술을 한 경우, 혈전증의 위험 인자가 있다면 저용량의 아스피린이나 와파린, 피하 헤파린 주사 등의 예방적 항응고 요법이 필요합니다.

바이러스 감염에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항인지질증후군 환자가 바이러스 감염 또는 알레르기 반응으로 전신 증상이 발생하면 다발성으로 혈관이 막혀 수일 이내에 신장, 심장 등 주요 장기 기능 부전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감기나 독감처럼 흔한 바이러스 감염도 항인지질증후군 환자에게는 더욱 주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독감 예방접종 등 감염 예방에 신경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치며

강직성척추염, 경증혈우병A, 항인지질증후군.

세 가지 질환 모두 겉으로는 표가 나지 않습니다. 통증이 있어도, 출혈 위험이 있어도, 혈전 위험이 있어도 — 겉모습은 멀쩡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더 외롭고, 더 이해받기 어렵습니다.

이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비슷한 상황에 계신 분들이 조금이라도 덜 외롭기를 바랍니다.

다음 글에서는 희귀질환 환자들에게 중요한 산정특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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